조선 왕조 실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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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01-10 05:3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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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92년(선조 25)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춘추관·충주·성주 3사고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, 진주사고의 실록만이 선비인 안의(安義)와 손홍록(孫弘祿)에 의해 내장산(內藏山)으로 옮겨져 병화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.






역사를 사실적으로 쓴 세계 최대 규모의 역사기록물일 뿐 아니라 금속활자, 또는 목활자로 된 인쇄물이라는 점에서도 문화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조선 왕조 실록에 대하여 설명한 리포트 입니다. 다만 태조·정종·태종 3대의 실록은 활자화하지 못하고 처음의 등사본을 그대로 보관하였다. 그 뒤 93년 내장산에서 실록을 넘겨받은 조정은 이를 해주(海州)로 옮기고 다시 강화도(江華島)·묘향산(妙香山)으로 옮겨 보관하다가 왜란이 평정된 뒤 실록 간행사업을 일으켜 1603년 7월부터 3년 동…(To be continued 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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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 왕조 실록
다.
이후 《세종실록》부터는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정초본(正草本) 외에 활자로 3부를 더 인쇄·간행하여 춘추관·충주·전주·성주의 각 사고에 1부씩을 보관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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history(역사) 를 사실적으로 쓴 세계 최대 규모의 history(역사) 기록물일 뿐 아니라 금속활자, 또는 목활자로 된 인쇄물이라는 점에서도 문화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조선 왕조 실록에 대하여 說明(설명) 한 리포트 입니다.조선왕조실록 , 조선 왕조 실록인문사회레포트 ,
조선 시대의 실록은 1413년(태종 13) 《태조실록》을 편찬한 것이 처음이며, 26년(세종 8)에 《정종실록》, 31년(세종 13) 《태종실록》을 편찬한 후, 이 3대 실록을 각 2부씩 등사하여 1부는 서울의 춘추관, 나머지 1부는 충주(忠州) 사고에 보관하였으나, 보존이 염려되어 전주(全州)·성주(星州)에 사고를 증설하고 다시 2부씩을 더 등사하여 1부씩 나누어 보관하였다.